城坡&아들이 밝힌 한국

{이는 성파의 진술에 의한 근거로, 사실인지 아들이 자료를 찾아 밝힌 것이다}
日本: 小森師は{構造社}で戦前{ブールデル:Bourdelle}に学んだ{斎藤素厳に師事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영남(領南)의 구상미술展"도록에서는 수월 김만술에 대하여 “영남지역 최초 현대 조각가“ 라고 처음으로 격상시켜 밝혔다
법보신문에서는 김용섭씨의 인터뷰에서 수월 김만술에 대하여 김복진(한국의 첫 근대조각가)의 직속제자라고 주장했다.
{수월 김만술의 불교조각은 정관 김복진의 계보를 직 간접적으로 따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성파 장용호를 칭찬 하였으며, 자신의 흉상을 부탁한 권옥연 화백의 9촌 삼종숙부가 조각가 권진규이고, 권진규의 스승이 시미즈 다카시 씨이고 시미즈 다카시의 스승은 부르델이다. (이 작가들의 예술적 영감이란 무엇인가? 귀신같이 알아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수월 김만술 선생은 자신이 부르델 제자 에게서 조각을 배웠다고 성파 장용호에게 알려 줬다.
 
이것이 사실인지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해도 안 나오다가 수월 김만술 선생이 언급한 일본에 있는 "히나코 지츠조 조각연구소"란 명칭은 잘못된 것이고, 히나고 지츠조가 사이토 소원과 같이 세운 조각연구소의 이름은 "구조사構造社"였다.
 
당시 사이토 소원이 부르델을 배웠다.는 내용이 일본 웹사이트에서 겨우 하나를 발견하고, 웹에서 차후 추가 증거들을 확보했다.
 
부르델의 영향을 전이 시켰고, 이를 입증하는 작품이 대구에 있는 인체로 된 대형작품들과, 특히 오늘날 없어진 황성공원의 시멘트 인체 군상이 있던 전몰장병추모탑을 두고 부르델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라 생각 된다고 성파는 설명했다.
 
아들인 나는 저 말을 몇 년 전에 듣고 어제 늦저녁에 이상하게 한국 근 현대 미술사 공부를 하고 싶었다. 수월 선생님의 스승은 누구예요?
 
물으니까 수월 선생의 스승은 부르델 제자라던데?
 
참 못 미더워서 진짜냐고 재차 물으니까 수월 선생(내가 브루델 제자 에게서 배웠다.)이 거짓말 하겠냐는 조로 말 하였다.
 
이것을 공개적으로 말한 사사 생도는 분명 없었다. 있었다면 벌써 학계에 다 적혀져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이제까지 성파 장용호는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예술 학파 계통의 그 내력을 브루델 학파라고 자랑 하지도 않았고, 오직 작품의 인정만으로 자신의 입지를 설명 하고자 재야 조각가로 생각 하였다.
 
수월 선생이 말한 환쟁이 덕분에 일본인 독지가의 도움이 있어, 유학가고 징병을 피한 만큼, 성파는 환쟁이 기술 덕분에 당시 금성출판사 사장이 성파가 만들어 준 자신의 흉상에 칭찬받고, 프랑스와 영국 스케치 여행을 떠났고, 로댕미술관과 부르델미술관을 다녀온 귀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이 브루델 학파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면,
이는 우리가 서양의 예술을 일제시절을 거쳐서 우회해 들어 와야 했던 우리 미술사의 설움을 바꿔 놓은 감흥이 아니었을 지?
 
수월 선생은 잠시 조각가 김복진의 부름을 받고 일본유학을 마친뒤 찾아온 해방후 잠시 서울에서 조각으로 살 수 있는 길을 도모했지만, 가족들의 어려움을 좌시하지 못하고 경주로 돌아왔다.
 
수월 선생은 경주에서 해방 후 '남한 최초 미술학교'인 '경주예술학교'(1946년 5월, 경주예술학원은 2년제 사설 예술학교=1948년 3월, 3년제로 학제개편)를 위해서 집한채 금액을 날렸다.
 
성파는 수월 선생을 만나기 전 오늘날 포항대학교를 졸업하고, 자신의 미래는 회사에 안주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서양화가 김홍 선생으로 부터 그림의 데생은 정확한데, 남들과 비교해 볼 때 색감이 안 맞아서 조각을 권유하며 수월 선생을 추천했고, 추상을 더 좋아 했으나 생업 때문에 추상 작품을 많이 하지 못하고, 인체 사실 중심의 소조가 수월 선생처럼 지방에서 영위하게 된 것이다.
 
성파는 고향인 영덕을 떠나 수월의 문하로 들어가면서, 로댕과 브루델과 흡사한 가정사와 예술관을 겪으며, 살아왔고 경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겼다.